(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 느린 커브를 결정구로 삼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통산 77승탑을 쌓았다.
류현진은 21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에서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한 방문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단타 4개만 허용하고 2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했다.
토론토는 10-3으로 대승했다.
홈런 5방을 터뜨린 타선의 막강한 화력을 등에 업은 류현진은 왼쪽 팔꿈치 수술 후 빅리그 복귀 4번째 등판에서 가장 편안하게 승리를 안았다.
시즌 성적은 2승 1패, 평균자책점은 1.89다. 일주일 전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복귀 첫 승리를 거둔 이래 2연승 행진이자 두 경기 연속 비자책점 투구다.
컵스와의 경기에서는 '전가의 보도'인 체인지업이 위력을 떨쳤다면, 이날에는 커브가 주효했다.
류현진은 시속 110∼120㎞대도 아닌 100㎞대의 '아리랑 커브'로 완급을 완벽하게 조절했다.
이날 신시내티 선발 투수는 시속 161㎞의 빠른 볼을 우습게 던지는 우완 헌터 그린으로, 포심 패스트볼의 시즌 평균 구속은 류현진보다 16㎞나 빠른 시속 158.9㎞였다.
토론토를 상대로도 최고 시속 161.3㎞의 광속구를 던졌지만, 3이닝 동안 홈런 5방 등 안타 10개를 맞고 9실점(8자책점) 하고서 류현진보다 먼저 마운드를 떠났다.
강속구 투수 그린의 조기 강판과 정교한 제구를 앞세운 류현진의 농익은 투구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신시내티 라인업을 채운 7명의 우타자는 류현진이 던지는 바깥쪽 체인지업에는 비교적 빠르게 반응했다. 잡아당겼다가는 내야 땅볼에 그칠 게 뻔하므로 연구한 대로 결대로 밀어 쳤다.
첫 번째 비기가 신시내티 타자들의 레이더에 걸려들자 류현진은 결정구를 두 번째 필살기 커브로 바꿨다.
류현진은 커브로 3개, 송곳 직구로 2개, 체인지업과 컷 패스트볼로 1개씩 등 복귀 후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7개의 삼진을 낚았다.
특히 마운드에서 오른손 타자의 몸쪽으로 마치 사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궤적을 그린 커브는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선구안이 뛰어난 좌타자 조이 보토는 바깥쪽에 휘어져 떨어지는 낙차 큰 커브에, 우타자 엘리 데 라 크루스는 몸쪽 아래로 폭포수처럼 떨어진 커브에 방망이를 참지 못했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을 던졌다가 연속 안타를 허용한 5회말 1사 1, 2루에서 맷 매클레인을 몸쪽 높은 커브로 포수 파울 플라이를 유도한 뒤 데 라 크루스에게는 12시에서 6시로 떨어져 스트라이크 존에 박히는 커브를 던져 삼진을 낚았다.
삼진을 솎아낸 커브의 시속은 105∼107㎞였다.
MLB닷컴의 통계 사이트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류현진의 이날 빠른 볼 최고 구속(시속 144㎞)과 가장 느린 '아리랑 커브'(시속 105㎞)의 구속 차는 시속 39㎞에 달했다.
신시내티 타자들은 체인지업(18개)에 버금가는 커브(16개)에 갈팡질팡하다가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날카롭게 파고든 평균 시속 141㎞짜리 직구에 의표를 찔렸다.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고도의 기술 덕에 류현진은 장타를 한 방도 맞지 않고 승리로 가는 지름길을 닦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류현진을 응원한 한국의 팬들이나 더그아웃에서 초조하게 류현진을 바라보던 토론토 벤치 모두에 안도감을 주는 투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