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결국 두산 베어스는 힘에 부쳤다.
매년 가을이면 '미라클'을 창조하는 두산이지만 3계단을 한꺼번에 오른 뒤에는 기진맥진이었다.
지난 18일 끝난 2021신한은행 SOL KBO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에서는 '막내 구단' kt wiz가 두산 베어스를 4승 무패로 완파하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kt가 다소 앞설 것으로 여겨졌지만 두산이 단 1경기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더욱이 앞선 시리즈에서 두산의 기세는 너무 좋아 보였다.
정규시즌 4위를 차지한 두산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키움 히어로즈와 1승 1패를 기록한 뒤 상위 팀 프리미엄으로 라운드를 통과했고,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는 3위 LG 트윈스에 2승 1패로 승리했다.
두산은 플레이오프(PO)에서도 2위 삼성 라이온즈를 2승 무패로 간단히 제압하고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하지만 올가을 두산의 진군은 거기까지였다.
kt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는 마운드와 팀 타선 모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특히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팀 타율 3할대를 자랑했던 두산 방망이는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팀 타율 0.211, 1홈런, 8타점으로 침묵하며 반격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어찌 보면 거듭된 강행군으로 인해 예정된 결말이었다.
현재 KBO리그가 채택한 '스탭래더(Stepladder)' 방식의 포스트시즌 대진 방식은 1위 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이긴 팀이 3위와 준PO를 치르고 다시 2위와 PO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오르게 되면 투수력이 바닥나는 것은 물론 타자들마저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하다.
2015년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뒤 와일드카드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은 없다.
한국시리즈에 오른 것도 올해 두산이 처음이었다.
반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와일드카드 팀이 종종 우승컵을 안았다.
메이저리그는 단판 승부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고 나면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 월드시리즈는 지구 1위팀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르기 때문이다.
10개 구단이 단일리그를 치르는 KBO리그는 포스트시즌을 상위 팀이 유리한 '계단식'으로 진행하지만, 30개 구단이 양대 리그에 포진한 메이저리그는 사실상 8강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이다.
이런 까닭에 메이저리그에서는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1994년 이후 7번이나 와일드카드 팀이 정상에 올랐다.
1997년과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마이애미 말린스의 전신), 2002년 애너하임 에인절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2011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4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9년 워싱턴 내셔널스가 모두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해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정규리그에서 지구 1위도 못한 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승부에 변수가 많으면 재미를 더할 수 있는 게 스포츠의 묘미이기도 하다.
KBO리그에서는 와일드카드 팀이 무려 4계단을 통과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언더 독의 반란'을 지켜볼 수 있다면 새로운 흥밋거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