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1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2012 프로야구 올스타전. 웨스턴팀 선발투수 한화 류현진이 2회말을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홍규빈 기자 = KBO리그 친정팀 한화 이글스가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의 자존심을 살렸다.
한화는 22일 류현진과 8년 최대 170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총액 170억원은 종전 기록인 양의지(두산 베어스)의 4+2년 최대 152억원을 뛰어넘는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액 규모다.
미국프로야구(MLB) 스토브리그에서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던 류현진으로서는 친정팀의 환대가 고맙다.
지난해 10월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 류현진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 여러 구단이 행선지로 거론됐으나 번번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몸값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겠으나 류현진은 MLB 구단들의 박한 평가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특히 심리적인 마지노선이었던 연평균 1천만달러를 제안한 구단이 없었다.
류현진 측 관계자는 "올겨울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 연평균 1천만달러 이상의 계약 제안을 받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류현진이 KBO리그 복귀를 고민했다"고 전했다.
'1천만달러'는 한화가 2012년 류현진을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할 때 최저한도로 잡았던 금액이기도 하다.
당시 한화는 1천만달러 이상을 제시하는 빅리그 팀이 없을 경우 미국 진출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류현진에 대한 MLB 구단들의 평가는 상상 이상이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메이저리그 포스팅시스템 4위에 해당하는 2천573만737달러33센트를 한화에 안겼고, 이후 류현진과 6년 3천600만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시점에서 류현진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법도 하다.
미국 현지 언론으로부터도 냉정한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MLB 단장 출신 짐 보든은 류현진의 몸값을 1년 800만달러로 책정하면서 "부상 위험으로 1년짜리 계약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적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MLB트레이드루머스'는 2023시즌 류현진의 삼진 비율(17.0%), 이닝 수(11경기 52이닝), 직구 평균 속도(시속 88.8마일)를 언급하며 "'5이닝 투수' 이상의 대우를 받긴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한화는 묵묵하게 류현진의 선택을 기다렸다.
빅리그 잔류와 국내 복귀 사이에서 숙고할 수밖에 없는 류현진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며 인내심을 발휘했다.
한화는 지난해 10월 류현진이 FA 신분이 된 이래 꾸준하게 러브콜을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올해 1월 20일께 구단 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본격적인 영입전에 나섰고, 1월 말에는 류현진에게 복수의 계약안을 전달했다.
협상 기한은 따로 설정해두지 않았다.
류현진이 언제 합류하더라도 전력 강화는 물론 구단 흥행에 블록버스터급 호재라는 판단에서였다. 계약 시점이 3월 이후로 밀려도 전혀 상관없다는 분위기였다.
2022년 김광현의 SSG 랜더스 복귀 계약도 그해 3월 8일에 발표됐던 것이 모델로 언급되기도 했다.
설사 류현진이 올해 빅리그 잔류를 결정하더라도 '선수 생활 마지막은 한화에서 뛰겠다'는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는 신뢰도 있었다.
믿음은 통했다. 기약 없는 빅리그 계약 협상에 지친 류현진은 결국 한화의 손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류현진과 친분이 두터운 손혁 한화 단장의 '영업'도 한몫했다.
손 단장은 200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화 투수 인스트럭터를 맡으면서 류현진과 인연을 맺었다.
손 단장은 류현진이 2023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꾸준하게 연락과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설 연휴를 지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호주 스프링캠프에 있던 손 단장은 선수단보다 사흘 빠른 지난 18일 귀국해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2009년 3월 16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라운드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 전 열린 팀연습에서 손혁 인스트럭터가 멕시코전 선발로 나설 류현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