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래그십 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해마다 같은 코스, TPC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에서 열린다.
TPC 소그래스의 시그니처 홀은 17번 홀(파3)이다.
사방이 연못에 둘러싸인 아일랜드 그린을 지닌 17번 홀은 137야드의 짧은 홀이지만 수많은 드라마를 연출한 무대다.
TPC소그래스 17번 홀은 지난해 평균타수가 3.13타였다. TPC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에서 여섯번째로 어려웠다.
쉬운 홀은 아니지만, 더 어려운 홀이 5개가 있다는 건 극도로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난도는 어떤 홀보다 높다.
선수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작은 그린에다 조금만 샷이 빗나가도 볼이 물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그린 좌우 폭이 24m에 불과하고 앞에서 뒤까지는 20m밖에 안 된다. 아주 정확한 샷이 아니면 볼은 여지 없이 물 속이다.
더구나 그린 상공에 부는 바람은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선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마음속 두려움과 의심이다.
최근 20년 동안 이곳에서 물속으로 사라진 볼은 모두 990개에 이른다.
2007년에는 97개의 볼을 삼켜 가장 많았다.
작년에는 58개만 빠졌다. 2022년 64개보다 줄었다.
물에 빠지면 대개 더블보기를 적어내기 마련이다.
지난해 29명이 더블보기를 써냈다. 트리플보기 이상 스코어를 써낸 선수도 10명이다.
타이슨 알렉산더와 루카스 허버트는 8타를 쳤다.
보기도 45개나 쏟아졌다.
2005년 봅 트웨이는 3라운드 때 이곳에서 12타 만에 홀아웃했다. 그는 볼을 무려 4개나 물에 집어넣었다.
나쁜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홀인원이 12개 나왔다. 작년에는 1, 3, 4라운드에서 하나씩 홀인원이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대회 한 번에 홀인원 3차례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99년 프레드 커플스는 티샷을 물에 빠트렸지만, 벌타를 받고 티박스에서 다시 친 볼이 홀에 빨려들어가 '홀인스리'의 기쁨을 누렸다.
이곳에서 벌어진 연장전도 대개 실수가 승부를 갈랐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연장전은 2013년까지 17번 홀에서 서든데스로 치렀다.
가장 뼈아픈 실수는 역대 첫번째 연장전에 나왔다.
1987년 제프 슬러먼은 2m 버디 퍼트를 하려고 막 자세를 취했다. 들어가면 우승이었다.
막 퍼트하려는 순간 관객 한명이 연못으로 뛰어 들었다. 풍덩 소리에 놀라 어드레스를 푼 슬러먼은 다시 퍼트했지만 볼은 홀을 외면했다.
다음 연장전에서 그는 샌디 라일에게 졌다.
2008년 세르히오 가르시아와 연장을 벌인 폴 고이도스는 티샷을 물로 날려보내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2011년 최경주와 연장전에 맞선 데이비드 톰스는 3퍼트 보기로 졌다. 최경주는 쉽지 않은 파퍼트를 넣어 우승했다.
2014년부터는 3홀 합산 방식인데, 3홀 합산에서 챔피언이 결정나지 않으면 17번 홀에서 서든데스 연장전을 벌인다. 그래도 승자가 나오지 않으면 18번 홀, 16번 홀, 그리고 17번 홀, 18번 홀 순으로 서든데스 연장전 장소를 옮긴다.
이런 방식으로 바뀐 뒤 유일하게 열린 연장전 승패도 17번 홀에서 결판났다.
2015년 대회 때 리키 파울러는 3홀 합산에서도 동타를 기록한 케빈 키스너, 가르시아와 17번 홀 서든데스 연장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했다.
그는 1∼4라운드와 3홀 합산 연장전, 그리고 서든데스 연장전 등 모두 6번 17번 홀을 맞아 5번 버디를 뽑아냈다.
올해는 17번 홀에서 어떤 드라마가 쓰일지가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