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올해 7월 여자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이 구나단(39) 코치를 감독대행에 선임한다고 발표했을 때 농구인들이나 팬들 대부분 '구나단이 누구야' 하는 반응이었다.
1982년생 구나단 감독대행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11살 때 캐나다로 건너가 대학까지 캐나다에서 나와 국내에서 선수 활동을 한 적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생소한 인물이 감독대행을 맡은 신한은행은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중하위권으로 예상됐지만 2021-2022시즌 초반 2승 1패로 상위권에 올랐고, 구나단 감독대행이 타임아웃 때 논리정연한 말솜씨로 능숙하게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장면이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선수들이 이해하기 쉽게 지시하는 장면에 '일타강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구 감독대행이 실제로 국내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화제가 됐다.
구 감독대행은 4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캐나다 한인 신문에 명지대에서 농구 전문 과정 강의가 개설된다는 기사를 읽고 2009년에 한국에 왔다"며 "농구 지도자를 하고 싶어서 귀국했는데 그때는 한국 문화를 너무 몰랐고, 주위 권유로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대학 때까지 선수로 뛰고, 일찍 지도자로 전향했다는 그는 '엄청난 인기 영어 강사셨다고 들었다'는 말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했더니 그래도 회사에서도 좋게 봐주시고 많이 밀어주셔서 그 라인에서 좀 잘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2014년 초 결혼하면서 '유명 강사' 생활을 접고, 농구 지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 그는 2015년 명지대 농구 전문 과정에서 알게 된 이문규 전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의 연락을 받았다.
당시 중국 여자프로농구 상하이 지휘봉을 잡은 이문규 감독이 그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고, 구 감독대행은 중국에서 두 시즌 간 코치로 일했다.
이후 광저우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고 옮기려던 차에 한국과 중국의 사드 갈등이 불거지며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다는 구 감독대행은 이 시기에 중국에서 만났던 정상일 전 신한은행 감독의 제안을 받고 2019년 초 신한은행 코치에 선임됐다.
감독대행 첫해인 이번 시즌 2승 1패를 기록 중인데 첫 두 경기에는 팀의 '에이스' 김단비가 결장하고도 거둔 성적이다.
특히 10월 말 '우승 후보' 청주 KB를 상대로는 김단비 없이도 전반에 16점을 앞서다가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다.
구 감독대행은 "아직 세 경기밖에 안 했는데 주위에서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영어 강사 경력 때문에 더 화제가 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니 저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한국 농구를 잘 모르니 다른 감독님들에 비해 서너 배 더 준비해야 한다"며 "선수들이 저를 믿고 따라오게 하려면 제가 그만큼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시즌을 준비한 마음가짐을 소개했다.
첫 세 경기에 대한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자 구 감독대행은 "선수들은 200% 해줬기 때문에 100점, 저는 50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유일하게 패한 KB와 경기에 대해 "아무리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이라고 해도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뛰는 박지수가 있는 KB는 어려운 상대였다"라며 "그만큼 필요한 상황이 올 때마다 벤치에서 풀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제 점수는 50점"이라고 설명했다.
타임아웃 때 부드럽고 간결한 작전 지시가 화제가 됐지만 그는 "저도 훈련 때는 엄청나게 화를 내는 편"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농구 경기를 피아노 연주에 비유하기도 했다.
"피아노 선생님들이 연습 때는 옆에서 리듬을 딱딱 쳐가며 엄격하게 가르치지만 연주회가 되면 그때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자신의 느낌을 살려 연주하는 시간"이라며 "농구도 연습 때는 철저하게 완벽을 추구하고 저도 화를 내지만, 경기장에서는 선수들이 주인공이 돼서 자신의 실력을 팬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구나단 농구'는 '신한의 시스템 농구'라고 정의했다.
그는 "훈련을 통해 갖춰 놓은 시스템이 있다"며 "우리가 첫 두 경기는 스몰 라인업으로 갔는데 그럴 때의 시스템, 또 김단비와 곽주영이 복귀한 어제 하나원큐 경기에서 준비한 시스템 등 선수들이 그 시스템 안에서 자기 역할을 알고 그걸 소화하는 농구가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팀내 최고참 한채진(37)과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젊은 어메리칸 스타일 감독'답게 선수들과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구 감독대행은 "제 이름 '나단'이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인데 왕에게도 직언하는 인물"이라며 선수들이 감독 앞이라고 할 말을 못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즌 목표를 묻자 잘생긴 외모의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이미지의 구 감독대행은 다소 예상 밖의 답변을 했다.
'플레이오프 진출' 정도의 답을 기대했는데 그는 "물론 플레이오프 진출도 목표지만 어제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며 "어제 우리 팀 김애나 선수가 다쳐 한동안 못 나올 것 같은데, 정말 우리 선수들 모두 다치지 않고 시즌을 마치는 것이 중요한 목표"라고 선수들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는 세심함도 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