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 1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kt 박경수가 다이빙캐치를 잡은 뒤 기뻐하고 있다. 2021.11.1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1차전을 사흘 앞둔 지난 11일. kt wiz의 베테랑 내야수 박경수(37)는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팀 훈련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는 "지난해 포스트시즌(PS) 첫 경기를 앞두고 공식 가지회견에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다"며 "PS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촌놈처럼 떨렸는데, 긴장감이 경기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박경수는 "오늘 몇 시간이든 열심히 인터뷰할 테니 KS 1차전 공식 기자회견만큼은 빼달라"며 웃었다.
2003년 프로에 데뷔한 박경수는 그동안 PS와 인연이 없었다.
암흑기를 겪은 LG 트윈스에서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하다 신생팀 kt로 이적해 가을잔치를 밟아보지 못했다.
그는 프로 18년 차였던 지난해 처음으로 PS 무대를 밟았는데, 이는 국내 선수 최고령 PS 데뷔 기록이다.
박경수는 "PS 1차전을 치르기 전까진, PS도 정규시즌과 다를 것 없는 야구 경기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PS는 정규시즌과 전혀 다르더라. 멋모르고 경기 전 기자회견장에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많은 취재진과 분위기에 압도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PS에서 박경수는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8회 대타로 출전해 3구 만에 범타를 만들고 아웃됐다.
긴장감을 느낀 건 박경수뿐만이 아니었다.
kt 대다수 선수는 PS 경험이 없는 탓에 두산 베어스와 플레이오프(PO)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1승 3패로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박경수는 첫 KS 무대를 앞두고 지난해 PS를 뒤돌아봤다. 그리고 넉살 좋게 KS 1차전만큼은 사전 인터뷰를 사양하겠다고 했다.
박경수는 대신 이날 이례적으로 30분이 넘도록 입담을 풀었다.
그는 "이제 더는 질문거리도 없겠다"라며 만족한 듯 인터뷰실을 떠났다.
이후 박경수는 KS 1차전까지 취재진 앞에 서지 않았다. 그리고 KS 2차전에서 지난해와 전혀 다른 플레이를 펼쳤다.
박경수는 더는 떨지 않았다. 오히려 베테랑이 할 수 있는 담대한 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15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S 2차전 두산과 경기 1회초 무사 1,2루 위기에서 상대 팀 호세 페르난데스의 강습 타구를 몸을 던져 잡아낸 뒤 병살 플레이로 연결했다.
경기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타구를 침착하고 노련하게 막아냈다. 이 플레이로 kt 팀 분위기는 단단해졌다.
kt 선수들은 침착한 수비 플레이로 여러 차례 실점 위기를 벗어나며 6-1 승리를 만들었다.
박경수는 KS 2차전 데일리 최우수선수(MVP)상을 받고 경기 후 인터뷰실을 노크했다.
지난 11일 마지막 인터뷰 후 나흘 만이었다.
이날도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그러나 박경수는 더는 떨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베테랑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