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프로야구 kt wiz 이강철(55) 감독과 윌리엄 쿠에바스(31)는 올해 여름 '냉각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견과 다툼은 화해로 이어졌고, 이는 쿠에바스의 '성장 동력'이 됐다.
이 감독과 충분히 대화하며 소통한 쿠에바스는 2021년 가을, kt 야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혼신의 투구를 펼쳤다.
정규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기대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쿠에바스가 6월 19일 두산 베어스전까지 올해 정규시즌 10경기에서 2승 3패 평균자책점 6.40으로 고전하고, kt 토종 선발진의 호투가 이어지자 이 감독은 쿠에바스에게 '불펜 전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쿠에바스는 선발로 남길 원했다.
이강철 감독이 생각을 바꿨다.
대신 쿠에바스에게 "직구만 고집하지 말고, 좋은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활용하라"며 "또한, 마운드에서 조금 더 차분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감독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솔직히 쿠에바스와 냉전을 벌였는데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냉전에 이은 화해는 '빅게임 피처' 쿠에바스를 낳았다.
쿠에바스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보여준 kt 구단과 선수단의 동료애는 쿠에바스의 마음을 더 뜨겁게 했다.
'선발'로 남은 쿠에바스는 이번 가을 kt에 정규시즌과 KS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
kt는 정규시즌에서 76승 9무 59패로 삼성 라이온즈와 동률을 이뤘고, 10월 3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정규시즌 1위 결정전을 치렀다.
이강철 감독은 10월 28일 NC 다이노스전에서 공 108개를 던진 쿠에바스를 1위 결정전 선발로 내보내며 "2∼3이닝 정도만 확실하게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쿠에바스는 이 감독의 기대를 뛰어넘는 투구를 했다.
쿠에바스가 7이닝 1피안타 무실점 8탈삼진의 역투를 펼친 덕에 kt는 삼성을 1-0으로 꺾고, 정규시즌 1위에 오르며 KS 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11월 14일 열린 kt의 첫 KS 경기(1차전) 선발은 모두가 쿠에바스로 예상했다.
2주 가까이 쉬고 두산과의 KS 1차전에 선발 등판한 쿠에바스는 7⅔이닝을 7안타 1실점 8탈삼진으로 막았다. kt 선수 중 처음으로 KS에 선발 등판한 쿠에바스는 구단 첫 KS 승리투수가 됐다.
1년 전 kt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승리도 쿠에바스가 수확했다.
쿠에바스는 2020년 11월 12일 플레이오프(PO) 3차전 선발로 등판해 두산을 상대로 8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해 선발승을 챙겼다.
지난해 kt는 PO에서 두산에 1승 3패로 밀려 KS에 진출하지 못했다.
1년을 기다린 kt는 쿠에바스 덕에 KS에 직행하고, 떨리는 KS 첫 경기에서 승리했다.
쿠에바스는 이런 역투를 '보은'이라고 표현했다.
31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1 신한은행 쏠(SOL) KBO 정규시즌 1위 결정전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7회 말 kt 선발투수 쿠에바스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고 기뻐하고 있다. 2021.10.31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자료사진]
쿠에바스의 아버지는 올해 8월 한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세상을 떠났다.
삶의 멘토이자 든든한 기둥이었던 아버지의 별세에 쿠에바스는 큰 충격을 받았고, 체중이 5㎏이나 빠지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쿠에바스 곁에는 동료가 있었다.
kt 구단은 홈구장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코치진과 선수들은 쿠에바스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쿠에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에 동료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다시 마운드에 선 뒤에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느낀다. 직접 보시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을 내게 주신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1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 8회초 2사 1루에서 kt 선발 쿠에바스가 박승민 코치가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자 미소 짓고 있다. 2021.11.14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자료사진]
kt 동료들은 쿠에바스로부터 에너지를 얻었다.
KS 2차전 승리 투수 소형준(20)은 "쿠에바스의 투구를 보고 감탄했다"며 "같은 투수가 봐도 놀랄 정도다. 우리 팀 투수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엄지를 들었다.
포수 장성우(31)는 "쿠에바스가 이제는 직구 사인을 내도, 변화구를 던질 때가 있다"며 쿠에바스의 기술적인 성장에 주목했다.
쿠에바스는 "올해 내게 벌어진 가장 큰 사건 두 개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일과 팀의 KS 진출"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잃은 쿠에바스는 좌절하지 않고 마운드 위에서 밝은 에너지를 발산했다. 그 에너지는 'kt 창단 첫 통합우승'의 동력이 됐다.
쿠에바스가 KS의 문을 힘차게 열자, kt 동료 투수들이 호투로 화답했다.
2차전에서 소형준이 초반 고비를 넘고 6이닝 3피안타 5볼넷 무실점으로 역투했고, 쿠에바스에게 기분 좋은 자극을 받은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도 5⅔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4차전 선발 배제성은 5이닝 3피안타 3실점으로 '호투 대열'에 합류했다.
kt 선발 4명은 모두 선발승을 챙겼다. kt는 4전 전승으로 끝난 KS에서 4명의 선발 투수가 승리를 챙기는 '최초의 기록'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