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 3차전 kt wiz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1회말 kt 선발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가 역투하고 있다. 2021.11.17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프로야구 kt wiz의 외국인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4)는 자기주장이 강한 선수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힌다.
그의 성격은 경기 중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이목을 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6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경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데스파이네는 투구 중 벤치에 있던 통역을 불러낸 뒤 베테랑 포수 허도환에게 사인을 빨리 달라고 요구했다.
경기 중 투수가 포수의 사인 내는 속도에 관해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건 이례적인 일이다.
7월 4일 키움 히어로즈와 경기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상대 팀 이용규를 10구 승부 끝에 1루 땅볼로 아웃시킨 뒤 이용규를 향해 고함을 쳤다.
다혈질인 데스파이네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겉으로 표출한 것인데, 이로 인해 양 팀 사이에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질 뻔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 3차전 kt wiz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6회말 2사 1, 2루 상황 kt 선발투수 데스파이네가 교체되고 있다. 2021.11.17 [email protected]
kt 내부에선 데스파이네를 다독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이강철 kt 감독은 9월 29일 두산 베어스와 홈 경기 초반 데스파이네가 흥분한 상태에서 난타를 당하자 그를 교체하지 않고 계속 투구하도록 내버려 두기도 했다. 일종의 기 싸움이었다.
당시 데스파이네는 2회에만 7개 안타를 내주며 5실점 하는 등 크게 흔들렸지만, 이강철 감독은 투수를 바꾸지 않았다.
데스파이네는 결국 7회까지 개인 최다인 125개의 공을 던지고 교체됐다.
이강철 감독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데스파이네를 어르고 달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 3차전 kt wiz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5회말 경기를 마친 kt 투수 데스파이네가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2021.11.17 [email protected]
이런 사연 탓에 KS 3차전 선발 등판을 앞둔 데스파이네는 선수단에 믿음을 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데스파이네는 나흘 휴식 후 선발 등판을 고집하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지난달 29일 키움전을 마지막으로 긴 휴식을 취했던 데스파이네는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S 3차전 두산과 경기를 통해 19일 만에 출격했다.
등판 간격이 워낙 길었고, KS가 주는 중압감 때문에 적지 않은 이는 데스파이네를 불안하게 바라봤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 3차전 kt wiz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kt 선발투수 데스파이네가 역투하고 있다. 2021.11.17 [email protected]
기우였다. 데스파이네는 침착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고의 역투를 펼쳤다.
그는 2회 2사에서 양석환에게 좌전 안타를 내줬을 뿐, 나머지 이닝에선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으며 두산 타선을 꽁꽁 묶었다.
최고 구속 154㎞의 주무기 투심 패스트볼과 커브, 체인지업으로 두산 선수들을 요리했다.
야수들도 데스파이네를 도왔다.
3루수 황재균은 6회 선두 타자 박계범의 강습 타구를 잘 잡아 아웃 카운트를 올렸고, 계속된 1사 1루에선 2루수 박경수가 박건우의 깊숙한 타구를 잡은 뒤 중심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정확히 2루로 송구해 주자 정수빈을 잡았다.
야수들의 연이은 호수비에 더욱 힘을 낸 데스파이네는 첫 KS 무대에서 활짝 웃었다.
그는 5⅔이닝 동안 2피안타 2볼넷 4탈삼진 무실점의 기록으로 KS 데뷔전을 마쳤다.
데스파이네는 KS 3차전 데일리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이강철 감독은 경기 후 "데스파이네가 평소답지 않게 차분하게 공을 던지더라. 순한 양 같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데스파이네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플레이오프(PO)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투구를 해서 기회가 또 오면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오늘 호투는 작년부터 준비했던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윌리엄 쿠에바스(1차전 선발)와 소형준(2차전 선발)이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내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특히 투수 중에선 연장자라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