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지난달 23일. 프로야구 kt wiz의 팀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정규시즌 내내 1위를 달리던 kt는 2위 삼성 라이온즈와 대구 2연전에서 모두 패하며 1위 자리를 내줬다.
다 잡았던 정규시즌 우승을 놓치는 분위기였다.
kt는 최악의 상황에서 수원으로 돌아왔다. 적막감이 감돌던 그때, kt 최고참 야수 유한준(40)은 박경수(37)를 비롯한 몇몇 후배들을 조용히 불렀다.
유한준은 "아무래도 팀 분위기를 바꾸려면 뭔가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한 번 몸을 던져볼게"라고 넌지시 말했다.
깜짝 놀란 박경수는 유한준을 말렸다.
불혹의 나이인 유한준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등 부상 위험이 큰 거친 플레이를 하다가 다치면 선수 생명에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한준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인 24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과감히 몸을 던졌다.
그는 0-1로 뒤진 2회말 우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안타를 친 뒤 과감하게 2루로 달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결과는 세이프.
이후 유한준은 장성우의 좌전 안타 때 3루를 넘어 홈으로 파고들었다. 유한준은 다시 몸을 던졌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득점까지 성공했다.
최고참 유한준의 투혼에 kt 더그아웃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박경수는 "40대 형이 저렇게 뛰는데 후배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나"라며 "너도나도 몸을 던지며 뛰었다"고 말했다.
자극을 받은 주장 황재균도 내야 땅볼을 친 뒤 전력 질주해 1루로 슬라이딩을 했다.
박경수는 "그때 더그아웃 분위기는 묘했다"며 "다들 울컥했다"고 전했다.
유한준의 플레이는 후배들을 깨웠다.
kt는 해당 경기에서 7-1 완승을 하며 5연패 사슬을 끊었다. 이 경기는 선두 싸움의 동력이 됐다.
투수들도 야수 못지않은 투혼을 펼쳤다.
kt 토종 선발 고영표는 10월 28일 NC 다이노스와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 등판한 뒤 하루 휴식 후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SSG 랜더스전에 불펜 등판하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외국인 선수들도 동참했다.
윌리엄 쿠에바스는 10월 28일 NC와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 등판한 뒤 이틀 휴식 후 1일 삼성과 1위 결정전(타이브레이커)에 선발 등판해 역투했다.
kt 선수들은 창단 첫 통합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몸을 던졌다.
유한준이 일으킨 에너지는 작지 않았다.
kt는 삼성과 타이브레이커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한국시리즈(KS)에 진출했고, 두산 베어스와 KS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펼치며 4승 무패 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