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골프 사춘기'였던 것 같아요."
7월 초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VOA)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승을 신고한 고진영(26)이 꺼낸 말이었다.
지난해 12월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 4개 대회에만 출전하고도 2020시즌 상금왕을 차지했던 고진영은 세계랭킹 1위로 시작한 2021시즌엔 초반 슬럼프를 겪었다.
상위권 성적을 자주 올리긴 했으나 시즌 두 번째로 출전했던 3월 초 드라이브온 챔피언십 땐 LPGA 투어 데뷔 이후 좀처럼 한 적 없는 컷 탈락이 나오는 등 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털어놓기론 그는 그쯤 조모상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격리 기간 탓에 귀국하지 못하면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지키지 못해 슬픔과 자책감이 더 컸다.
"미국에서 대회를 준비하면서 너무 우느라 하루 3∼4시간밖에 못 잤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골프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사춘기'엔 '시간이 약'이라고 믿은 고진영은 연습에 집중하며 골프에 대한 열정을 되살렸고, VOA 클래식에서 7개월 만에 우승 물꼬를 다시 틀 수 있었다.
시즌 첫 승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했으나 그 앞뒤로 치른 메이저대회에선 중위권 성적에 그치며 세계랭킹 1위를 넬리 코다(미국)에게 내준 고진영은 금메달 기대를 모으며 출전한 8월 도쿄올림픽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다.
공동 9위로 생애 첫 올림픽을 마치고 코다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당시 코다의 상승세를 평가하며 "저도 근성이 더 올라오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 고진영은 이후 한 달가량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훈련에 매진했다.
예전 스윙 코치였던 이시우 코치와 연습하고 퍼터도 바꾸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올림픽 이후 처음 나선 LPGA 투어 대회인 9월 중순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곧장 정상에 오르며 '화려한 가을'의 신호탄을 쐈다.
포틀랜드 클래식 이후 고진영은 아칸소 챔피언십 공동 6위, 숍라이트 클래식 공동 2위로 상승 흐름을 이어가더니 10월 초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에서 시즌 3번째 우승을 수확했다.
당시 LPGA 투어 통산 10번째이자 한미 통산 20승을 '와이어 투 와이어'로 장식했고, 14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를 써내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2005년 남긴 LPGA 투어 역대 최다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겹경사도 누렸다.
이어 10월 21∼24일 부산에서 열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선 연장전 끝에 정상에 올라 '한국 선수 LPGA 투어 통산 200승'이라는 금자탑과 함께 시즌 4승째를 올렸다. 이 대회 이후 4개월 만에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되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다에게 다시 세계 1위를 내준 뒤 지난주 펠리컨 챔피언십에선 공동 6위에 자리한 고진영은 22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올해 LPGA 투어 최다승에 해당하는 5승과 함께 많은 것을 얻었다.
올해의 선수 부문과 상금에서 코다에 이어 2위를 달린 가운데 나선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두 부문 모두 '뒤집기'에 성공, LPGA 투어 최강자의 자리를 굳건히 하며 완벽한 시즌 피날레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