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코치와 선수가 팀을 무단으로 이탈했는데, 정작 감독이 경질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은 21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팀 내 불화, 성적 부진 등 최근 사태의 책임을 물어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경질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선수단과 감독 사이에서 발생한 불화라면 그 원인이 무엇이건 양쪽 모두 책임이 있기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감독만 희생양이 됐다.
무책임하게 팀을 이탈해 선수단 분위기를 해친 김사니 코치에게 구단은 한없이 너그러웠다.
IBK기업은행은 김사니 코치에 대해 "사의를 반려하고 팀의 정상화를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코치는 당장 23일 흥국생명과의 방문 경기부터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 예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무단으로 이탈한 주전 세터 조송화에 대해서는 상응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조송화와 함께 불화설을 일으킨 김 코치가 감독대행에 오르면서 조송화 역시 팀에 복귀할 가능성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서 감독에게 반기를 든 코치와 선수는 팀에 남고, 감독만 팀을 떠나게 됐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시즌에도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몇몇 고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 내에 파벌이 형성됐다.
김우재 전 감독은 훈련에 불성실한 고참 선수들 대신 의욕적인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이에 고참 선수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태업성 플레이로 일관했다. 팀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안나 라자레바는 눈물을 쏟으며 뛰었다.
지난 시즌 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 라자레바가 떠난 올 시즌 IBK기업은행은 최하위로 추락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서브 리시브 효율이 리그 최하위였다. 리시브가 안 되니 센터진은 있으나 마나였다.
거의 전적으로 라자레바의 '원맨쇼'에 의지해 리그 3위를 차지했다. 라자레바가 떠난 올 시즌 IBK기업은행의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김 전 감독은 세터 조송화를 비롯해 몇몇 고참 선수들의 트레이드를 구단에 강력히 요구했다.
리빌딩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고참 선수들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기를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BK기업은행은 김 전 감독의 요청을 경청하는 대신에 재계약을 포기하고 새 사령탑으로 서남원 감독을 선임했다.
파벌은 그대로 남았고, 고참 선수들은 김 전 감독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다.
선수들이 자신들 입맛대로 감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경에선 어떤 사령탑도 성공할 수 없다.
배구판에서 알아주는 '덕장'인 서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서 감독이 서브 리시브 훈련을 강도 높게 시키자 고참 선수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서 감독은 지난 12일 KGC인삼공사전에서 경기 도중 작전타임을 불러 세터 조송화에게 "웬만하면 (오버핸드로) 토스해. 왜 자꾸 언더(토스) 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조송화는 감독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알겠습니다"가 아닌 "실수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IBK기업은행의 주장이자 주전 세터 조송화는 지난 16일 페퍼저축은행과의 원정경기 이후 팀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송화와 함께 팀을 이탈하며 '사퇴 의사'를 밝힌 김사니 코치는 생각을 바꿔 팀에 합류했다.
그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구단 프런트는 문제를 방치하거나 일부 고액 연봉 선수들의 편을 들며 오히려 갈등을 키웠다.
곪을 대로 곪은 종기를 제대로 도려내지 않으면 이와 같은 사태는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IBK기업은행은 문제를 직시하는 대신 서 감독을 경질하며 오히려 사태를 회피했다.
눈 밝은 배구 팬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실망하는 배구 팬들이 늘어나면 리그도 공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