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31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1 신한은행 쏠(SOL) KBO 정규시즌 1위 결정전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7회 말 kt 선발투수 쿠에바스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고 기뻐하고 있다. 2021.10.31 [email protected]
(대구=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kt wiz 구단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윌리엄 쿠에바스(31)가 '야구 만화 소재'가 될만한 역투를 펼쳤다.
쿠에바스는 2021년 프로야구 가을잔치 첫 번째 영웅으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결과를 냈고, 오랫동안 회자할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쿠에바스는 3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프로야구 2021 신한은행 쏠(SOL) KBO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안타 1개만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볼넷은 2개만 내줬고, 삼진은 8개나 잡았다.
kt는 정규시즌 144경기에서 76승 9무 59패로 순위를 가리지 못한 삼성을 1-0으로 꺾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동시에 구단 최초로 한국시리즈행 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승리의 주역은 단연 쿠에바스였다.
지난 28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선발 등판해 공 108개를 던진 쿠에바스는 단 이틀만 쉬고서 다시 선발 등판했다.
일반적으로 선발 투수는 나흘 이상을 쉰 뒤에 등판한다.
108구 투구 뒤 다시 선발 등판하는 건, 한국프로야구 초창기나 고교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강철 kt 감독마저 "오늘 쿠에바스가 긴 이닝을 던지기 어렵다. 한 타자, 한 이닝씩 던지는 모습을 보겠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쿠에바스는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에너지를 끌어모으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31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1 신한은행 쏠(SOL) KBO 정규시즌 1위 결정전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8회 말 kt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낸 후 선발투수 쿠에바스와 강백호가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2021.10.31 [email protected]
경기 뒤 쿠에바스는 "나도 긴 이닝을 던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해 오늘은 선발이 아닌 불펜처럼 짧은 이닝에 전력투구할 생각이었다"며 "3회 이후에는 투수코치가 내 상태를 점검했다. 이닝이 끝날 때마다 나는 '괜찮다. 더 던질 수 있다'고 답했다. 나도 모르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됐고, 정말 힘들어서 던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까지 투구했다"고 역사적인 호투를 떠올렸다.
그는 "이틀만 쉬고 또 선발 등판한 건, 내 야구 인생 처음"이라며 "오늘 승리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니, 휴식 시간을 얻지 않았나. 내가 가진 걸 다 쏟아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쿠에바스는 공 99개를 던졌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0㎞였다.
우익수 재러드 호잉의 실책으로 맞은 7회말 1사 1, 3루 위기에서는 강민호를 2루수 뜬공으로 처리하고, 이원석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2021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명장면을 연출했다.
삼성 선발 원태인(6이닝 2피안타 1실점 비자책)에 눌린 kt 타선은 6회초 터진 강백호의 적시타로 1점만 뽑았다.
그러나 쿠에바스는 귀중한 1점을 지켜냈다.
경기 뒤 강백호와 마주친 쿠에바스는 정확한 한국 발음으로 "강백호, 사랑해"라고 말하며 웃었다.
kt 선수들 모두가 쿠에바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쿠에바스는 "kt라는 팀이 하나로 뭉쳐 좋은 경기를 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내 역할도 있었지만, '팀 kt'가 만든 승리"라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7회 위기 상황을 복기하면서도 "경기하다 보면 실책이 나올 수 있다. 내가 집중력을 유지하면 팀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호잉을 감쌌다.
(대구=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kt wiz 윌리엄 쿠에바스가 3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프로야구 2021 신한은행 쏠(SOL) KBO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마운드 위에서는 강인한 표정을 하고, 인터뷰실에서는 밝은 미소를 지었지만 쿠에바스는 가슴에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쿠에바스의 아버지는 8월 한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세상을 떠났다.
삶의 멘토이자 든든한 기둥이었던 아버지의 별세에 쿠에바스는 큰 충격을 받았고, 체중이 5㎏이나 빠지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쿠에바스는 부친상을 치른 뒤, 다시 힘을 냈고 에이스 자리로 돌아왔다.
홈구장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 추모 공간을 만들고, 직접 위로도 전한 kt 구단과 동료들에게 진한 애정도 느꼈다.
쿠에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에 동료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다"며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다시 마운드에 선 뒤에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느낀다. 그 에너지가 오늘과 같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했다.
kt 동료들도 설명할 수 없는 '쿠에바스 아버지의 에너지'에 고마움을 느낀다.
쿠에바스는 하늘에서 지켜볼 아버지와 더 가까워진 kt 동료들을 위해 한국시리즈에서 더 강한 투구를 할 생각이다.
쿠에바스는 "오늘 느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한국시리즈에서도 내게 힘을 줬으면 한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