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봄에는 1군 마운드에 서지 못하고, 여름에도 가끔 모습을 드러내던 베테랑 왼손 불펜 이현승(38·두산 베어스)은 가을이 되자 활동 영역을 넓혔다.
한국프로야구 2021년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도, 이현승은 중요한 순간에 등판했다.
이렇게 이현승은 개인 통산 9번째 가을잔치를 시작했다.
이현승은 1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2021 KBO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에 구원 등판해 1이닝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1999년생 선발 곽빈은 최고 시속 153㎞ 직구를 앞세워 4회까지 노히트 노런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5회 들어 송성문에게 우익수 쪽 2루타, 이지영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고 실점했다.
5회 2사 1, 2루, 키움 베테랑 좌타자 이용규가 타석에 들어서자 김태형 감독은 1983년생 최고참 이현승을 마운드에 올렸다.
이현승은 공 1개로 이용규를 1루 땅볼 처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6회에도 등판한 이현승은 국가대표 내야수 김혜성을 유격수 직선타로 잡고, 2021년 타격왕 이정후마저 1루수 땅볼로 돌려세웠다.
좌완 스페셜리스트 이현승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다.
이현승은 정재훈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오자, 후련한 표정으로 공을 건넨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이날 그가 던진 공은 단 7개였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38㎞에 그쳤다.
그러나 시속 150㎞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진 홍건희(1⅓이닝 2피안타 1실점), 이영하(⅓이닝 2피안타 2실점), 김강률(1⅓이닝 1피안타 2사사구 3실점)보다 효과적인 투구를 했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PO)에서 처음 포스트시즌 무대에 오른 이현승은 15년이 지난 2021년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일 WC 결정 1차전은 이현승의 포스트시즌 통산 37번째 등판이었다.
이현승은 역대 포스트시즌 투수 개인 통산 출전 공동 3위로 올라섰다.
은퇴한 이혜천(46경기), 권혁(39경기)만이 이현승보다 자주 포스트시즌 경기에 등판했다. 이현승과 같은 37번의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른 임창용도 은퇴했다.
1차전에서 4-7로 패한 두산이 2차전에서 반격해 가을잔치를 더 이어간다면 이현승은 이혜천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포스트시즌에서 40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가 될 수 있다.
이현승은 "이제 나는 조연의 역할에 만족한다"며 기꺼이 후배들에게 앞자리를 내줬다.
올해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6월 1군 엔트리에 진입했지만 8경기만 던지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을 때는 세월의 무게를 체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8월 21일 복귀한 그는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1군 자리를 지켰다.
두산이 단기전처럼 경기를 운영하며 순위 싸움을 벌인 10월에는 베테랑의 가치도 증명했다. 이현승은 10월 14일 kt wiz전부터 30일 한화 이글스전까지 10경기 6⅓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벌였다.
이현승의 올해 정규시즌 성적은 5승 1패 7홀드 평균자책점 1.93(23⅓이닝 6실점 5자책)이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이현승은 주역일 때가 있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15년을 떠올리며 "그때 불펜에서는 이현승이 혼자 다 했다"고 말했다.
2015년 이현승은 준플레이오프 3경기 1승 2세이브(3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플레이오프 2경기 1세이브(5이닝 4피안타 무실점), 한국시리즈 4경기 1패 1세이브(5이닝 7피안타 1실점 비자책)로 역투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는 공도 이현승이 던졌다.
2016년 두산이 NC 다이노스를 4경기 만에 꺾고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올랐을 때도 이현승은 3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3⅔이닝 무피안타 무실점)를 거뒀다. 당시 막강한 선발진을 구축한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불펜 투수로 이용찬과 이현승 두 명만 기용했다.
이현승의 구속은 2015, 2016년보다 떨어졌고, 상대하는 타자의 수도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현승은 가을 무대를 지킨다.
그는 자신을 조연으로 낮춰 부르지만, 이현승이 등판하는 순간에 팬들은 짜릿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