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 알토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경기. 김호철 IBK기업은행 신임 감독이 경기 시작 전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1.12.18 [email protected]
(화성=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강력한 카리스마와 열정적인 지도로 유명한 김호철(66) 감독이 달라졌다.
현역 시절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해 명 세터로 이름을 떨친 김호철 감독은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당시 '방신봉 항명 사건'으로 팀 해체 위기를 겪던 현대캐피탈 사령탑을 맡았다.
'월드 스타' 김호철의 등장에 엉망이던 현대캐피탈의 팀 분위기는 단번에 바뀌었다. 패배 의식에 젖은 선수들을 다그치며 강한 훈련으로 이끌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힘든 훈련에 선수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김 감독이 체육관 옆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일화는 배구계에서 오랫동안 회자했다.
'김호철 처방'을 받은 현대캐피탈은 남자 프로배구 원년인 2005시즌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며 결실을 봤다.
강한 카리스마를 앞세운 김 감독의 호통 한마디에 선수들은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호통 호철', '버럭 호철'이라는 별명도 그때 생겼다.
그런 김 감독이 16년 전과 마찬가지로 불미스러운 사태로 위기를 맞은 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 사령탑을 맡자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여자배구에 경험이 없는 김 감독이 무리하게 팀 재정비에 나섰다가 오히려 선수들의 반발만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화성=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 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 알토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경기.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21.12.18 [email protected]
하지만 막상 코트로 돌아온 김 감독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선수들의 훈련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호통치던 모습은 더는 찾을 수 없었다.
18일 전석(1천576석) 매진을 기록한 화성종합체육관에서 흥국생명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른 김 감독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을 지휘했다.
1세트 김희진이 블로커 터치 아웃으로 김 감독의 첫 여자부 경기 득점을 만들어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새 외국인 선수 달리 산타나(등록명 산타나)가 연속 득점에 성공하자 주먹을 불끈 쥐며 선수들과 함께 포효하는 모습도 보였다.
수비 실수로 실점한 뒤엔 선수들을 다독이며 다음 플레이를 준비하도록 독려했다.
작전타임 때마다 선수들을 격하게 다그치는 모습도 사라졌다.
1세트 연속 공격 범실이 나오자 세터 김하경의 어깨를 두드리며 '과감한 플레이를 하라'고 주문했다.
2세트에서도 흥국생명에 리드를 내주자 김 감독은 호통 대신 "차근차근 하나씩 해내자"며 선수들의 기를 살렸다.
김 감독은 첫 경기에서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지만, 예전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을 믿고 기다리겠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 감독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다"며 "오늘 경기에서 리시브가 불안했는데 꾸준하게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바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이런 변화는 여자배구 국가대표 출신인 아내 임경숙 씨와 이탈리아에서 선수 생활을 한 딸 김미나 씨의 조언 덕분이다.
김 감독이 IBK기업은행 감독으로 내정되자 딸 미나 씨는 "아빠에게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한편으로는 무척 용맹하고 거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자상하다. 두 가지 성격이 여자배구팀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원했다고 한다.
아내 임경숙 씨도 "잘 해낼 수 있다"며 남편이 여자배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절친한 선후배인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과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김형실 감독은 경기 전 김호철 감독을 만나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눈 뒤 책 한 권을 주고 관중석으로 돌아갔다.
김형실 감독이 건네준 책의 제목은 '여성 심리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