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저 선수가 돌아가야 하는 선수인지 모르겠어요. 마인드가 참 좋습니다."
지난 2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과 현대캐피탈의 3라운드 마지막 경기.
현대캐피탈의 외국인 선수 로날드 히메네즈(31)가 3세트 13-13에서 때린 후위 공격은 처음에는 아웃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블로커 터치아웃으로 판정이 번복되자 양팔을 크게 휘저으며 홈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유도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SBS 스포츠의 최천식 해설위원과 유희종 캐스터는 "히메네즈의 마인드가 참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히메네즈는 왼쪽 허벅지 부상이 장기화하면서 결국 교체가 결정됐다. 며칠 후면 팀을 떠나게 된 마당에 설렁설렁 뛸 법도 한데, 히메네즈는 정반대다.
끝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을 넘어 홈팬들의 호응을 유도할 정도로 팀에 강한 애착심을 드러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캐피탈은 히메네즈에게 결별 통보를 한 뒤부터 상승세를 탔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22일 삼성화재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꺾고 5연패에서 탈출했다.
히메네즈는 교체 결정을 통보받은 뒤 첫 경기가 된 이날 양 팀 최다인 19득점을 했다. 공격 성공률도 70.37%를 기록했다.
최태웅 감독은 "히메네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가슴 뭉클한 경기였다"며 "교체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프로 선수로서 자세가 확실히 갖춰져 있었다" 말했다.
교체 결정 직후 펄펄 난 히메네즈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프로 선수라면 팀의 결정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며 "부상 때문에 100%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외국인 선수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외국인 드래프트를 통해 뽑은 보이다르 뷰세비치(세르비아)는 기량 미달과 함께 불성실한 태도로 퇴출당했다.
대체 선수로 영입한 히메네즈는 개막을 코앞에 두고 왼쪽 허벅지를 다쳤다.
회복까지 12주 정도 걸린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히메네즈는 재활에 속도를 내며 11월부터 코트에 섰다.
하지만 컨디션이 쉽게 오르지 않자 현대캐피탈은 히메네즈와 잔여 시즌을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해 펠리페 알톤 반데로(등록명 펠리페) 영입에 나섰다.
대체 선수로 펠리페를 낙점하긴 했지만, 펠리페는 취업비자 발급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입국 후 자가격리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내년 1월 중순 이후에나 출전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이 이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관건이었는데, 히메네즈가 진정한 프로 정신을 발휘하며 이 고민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히메네즈는 26일 OK금융그룹전에서도 14득점에 공격 성공률 54.55%로 활약했다.
교체 결정이 나오기 전의 공격 성공률 평균인 48.95%를 크게 웃돌았다.
현대캐피탈은 히메네즈의 프로 정신에 힘입어 5연패 뒤 2연승을 달리며 상승세를 탔다.
현대캐피탈은 국가대표 레프트 전광인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복귀해 전력 상승을 기대한다.
전광인이 페이스를 되찾을 때까지 히메네즈가 좀 더 시간을 벌어주고 펠리페에게 배턴을 넘기면 현대캐피탈은 본격적인 상승 궤도에 올라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