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프로야구 SSG 랜더스 벤치는 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방문경기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선발로 예고했던 왼손 투수 로에니스 엘리아스가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다가 왼쪽 옆구리를 삐끗해 등판이 어렵다고 한 것이다.
SSG 코치진이 부랴부랴 대체 선발을 찾다가 떠올린 선수는 같은 왼손 투수인 이기순(21)이다.
갑작스럽게 마운드에 올라간 이기순은 3⅔이닝 1피안타 5볼넷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펼쳤고, 팀은 3-0으로 승리했다.
비록 5회를 채우지 못해 승리는 얻지 못했어도, 기대 이상의 소득이다.
경기가 끝나고 만난 이기순은 시작 20분 전에 갑작스럽게 선발 등판을 통보받았다며 "배영수 투수 코치님이 기회라고 하셨다. 그래서 기회를 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예고되고 던지는 것보다) 오히려 부담감이 없어서 좋았다"고 했다.
이날 이기순의 최고 구속은 시속 142㎞에 그쳤지만, 슬러브를 앞세워 키움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았다.
이기순의 선발 등판은 이번이 데뷔 후 두 번째다.
동산고를 졸업한 뒤 SSG 2차 5라운드 지명을 받고 2022년 입단한 그는 지난해 1군에 데뷔했다.
지난달 30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는 퇴출당한 외국인 투수 로버트 더거를 대신해 데뷔 첫 선발 등판을 경험했다.
그날 이기순은 노시환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2⅔이닝 1피안타 4볼넷 4실점으로 고전해 데뷔 첫 패전을 떠안았다.
그로부터 18일 만에 선발로 다시 기회를 얻은 그는 이번에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기순은 "처음 선발로 나갔을 때는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오늘은 어차피 많은 이닝 못 끌고 가니까 뒤에 있는 좋은 선배님들 믿고 한 타자씩 잡아 나간 게 좋았다"고 했다.
(대전=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30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4 KBO리그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와 SSG 랜더스의 경기. SSG 선발 이기순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2024.4.30 [email protected]
동산고 대선배인 류현진(한화 이글스)과 선발 맞대결을 펼친 건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이기순은 "워낙 대투수라 가까이서 봐야 알 것 같더라. 멀리서 보기에는 제구도 좋고, 너무 잘 던지신다는 생각만 들더라. 인사는 따로 못 드렸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포수 이지영은 이기순보다 17살이 많은 대선배다.
어려울 법도 하지만, 이기순은 "이지영 선배가 던지라는 대로 던졌다. 그래도 고개는 몇 번 흔들었다. 그래도 될 정도로 팀 분위기가 좋다"며 웃었다.
이기순은 다음 달 10일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다.
1군 무대에서 활약할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는 "휴가를 얻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뛰고 싶다"면서 이숭용 SSG 감독에게 "감독님, 마지막까지 굴려주십시오"라고 당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