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비행기가 호텔에 충돌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항이랑 가까웠으니까요. 하지만 1, 2초 뒤 그게 지진이라는 걸 알았죠."
감비아 축구대표팀의 톰 생피에 감독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중세 고도 마라케시에서 71㎞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6.8의 강진이 닥친 지난 8일(현지시간) 밤을 '끔찍한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오는 10일 스타드 드 마라케시에서 콩고와 아프리카축구연맹(CAF) 네이션스컵 예선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인근 숙소에서 지내던 생피에 감독과 선수들은 지진의 위력을 몸으로 겪었다.
생피에 감독은 9일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지진이 30초 정도 이어진 것 같은데,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이어 "벽이 흔들리고 천장·벽에서 물건들이 떨어졌다. 살면서 건물이 이렇게 흔들리는 건 처음 봤다"며 "나와 선수들은 호텔 밖으로 뛰쳐나갔고, 다른 손님들과 함께 수영장 근처 야외에서 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무서웠다. 밤새 구급차 소리가 들려서 계속 뉴스만 봤다"고 덧붙였다.
당시 주민이 잠자리에 든 심야에 진원의 깊이가 10㎞ 정도로 얕은 강진이 닥치면서 현재 사망자만 2천명 넘게 집계됐다.
이외 1천400여 명이 중태에 빠진 데다 추가 수색과 구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사망자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피에 감독은 튀르키예 프로축구에서 뛰는 일부 선수가 심한 충격에 빠진 상태라고 전했다.
이들이 지난 2월 튀르키예, 시리아 일대에서 도합 5만8천여명의 인명을 앗아진 강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가나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크리스티안 아츠가 숨져 전 세계 축구계가 슬픔에 빠졌다.
생피에 감독은 "몇몇 선수는 내일 경기에 나서고 싶지 않다고 한다"며 "이 도시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는데 축구를 계속하는 게 현명한 일인가"라고 짚었다.
다행스럽게 감비아뿐 아니라 콩고 선수단에서도 다친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폴 푸트 콩고 감독은 "우리는 괜찮다. 하지만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다"며 "정신적으로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CAF는 10일 예정된 모로코와 라이베리아의 네이션스컵 예선 조별리그 K조 6차전 개최를 연기했다. 두 팀의 경기는 진원에서 약 260㎞ 떨어진 스타드 아드라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마라케시에서 예정된 감비아와 콩고의 G조 6차전은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생피에 감독은 로이터에 "경기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통보받았다. 모로코 경기는 취소됐는데 우리는 아니라니 조금 이상하다"고 밝혔다.
모로코는 이미 K조에서 최소 2위를 확보해 라이베리아와 최종전 결과와 관계 없이 본선행 티켓을 쥐었다.
반면 감비아-콩코전은 경기 결과에 따라 두 팀의 운명이 갈리는 경우의 수가 남아있다. 콩고가 5골 차로 이기면 승점(9), 골 득실(0)이 같아져 다득점으로 감비아를 누르고 본선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