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이동 거리가 짧았던 웨일스전에 오히려 부진해 체면을 구긴 '유럽파' 국가대표 선수들이 아시아 팀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13일(한국시간) 영국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사우디와 평가전에서 전반 32분에 터진 조규성(미트윌란)의 결승 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이겼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6경기 만에 챙긴 반가운 승리로, 유럽파 선수들이 선봉에 섰다.
최전방에서 부지런히 상대를 압박하며 수비진에 부담을 준 조규성은 클린스만호에서 마수걸이 득점을 신고했고, 주장 손흥민(토트넘)도 전방 전 지역을 누비며 '플레이메이커'로서 제 역할을 했다.
조규성과 투톱으로 출격, 사실상 '프리롤'을 맡은 손흥민은 두 차례 슈팅에 그친 대신 동료들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집중했다.
축구 통계 매체 풋몹에 따르면 손흥민은 후반 추가 시간 오현규(셀틱)와 교체할 때까지 득점 기회로 이어지는 '키패스'를 7차례나 기록했다.
특히 전반 36분 조규성의 패스 덕에 맞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하산 탐박티의 태클에 걸려 넘어지면서 직접 득점도 기대해볼 법한 장면도 나왔다.
탐박티의 태클이 한 박자 늦은 감이 있어 페널티킥이 기대됐지만,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자 손흥민이 땅을 치며 아쉬움을 표했다.
후반 3분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후방에서 전달한 패스를 받은 손흥민은 왕성한 활동량을 보인 이재성(마인츠)에게 절묘한 침투 패스를 공급하기도 했다.
무함마드 우와이스 골키퍼의 선방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조규성의 득점을 제외하고 가장 좋은 장면을 유럽파들이 연출했다.
후반에는 '수비의 핵' 김민재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김민재는 1분 후에는 중앙 수비수인데도 전방 왼쪽 전방 지역으로 올라오더니 빠른 발을 살려 돌파를 시도해 코너킥을 얻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직후 사우디의 공격에서는 어느새 최후방까지 이동해 상대의 침투 패스를 끊어내는 '철통 수비'를 선보이기도 했다.
후반 28분에는 페널티지역 내 알리 하자지에게 뒷공간을 허용했는데, 어느새 김민재가 나타나 몸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후방을 단속했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상대 컷백을 걷어낸 후 공이 낙하하는 지점까지 전력 질주해 후속 공격까지 방해하는 '진기명기'도 보여줬다.
68분간 신나게 측면을 누빈 황희찬(울버햄프턴)도 후반 들어 저돌적 돌파가 돋보였다.
후반 10분 황희찬이 페널티지역 왼 측면에서 1대1 공격을 시도, 저돌적 돌파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린 후 가까운 골대 구석을 향해 날카로운 슈팅을 찼으나 이번에도 우와이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황희찬은 후반 22분에도 같은 위치에서 야시르 샤흐라니를 상대로 왼 측면 돌파를 시도해 골대 바로 옆 지역까지 전진하기도 했다.
유럽파 선수들은 이번 원정 중 비교적 짧은 이동 거리로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어 활약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클린스만호는 지난 8일 영국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일스전에서 졸전을 펼쳤다.
90분 내내 상대 수비벽을 뚫지 못해 횡·백패스에 시간을 보내고, 역습에 허둥대며 10개의 슈팅(유효슈팅 3개 포함)을 허용한 채 0-0으로 비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절치부심해서인지 클린스만호는 '아시아 팀' 사우디와 경기에서는 유럽파를 주축으로 우세한 경기력을 보였다.
공 점유율은 47% 대 53%로 뒤졌지만 슈팅(19 대 7)·유효슈팅(9 대 2) 등 공격 지표에서 사우디를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