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9년 만에 선발승을 거두고, 방송 인터뷰를 마친 뒤 후배들로부터 '물벼락 축하'를 받은 하영민(29·키움 히어로즈)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눈물이 아니라) 음료수를 맞는 바람에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눈은 촉촉했다.
3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 5이닝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를 펼쳤다.
딱 70개를 던졌고, 최고 시속 147㎞ 직구와 포크볼, 커브, 슬라이더를 적절하게 구사했다.
시즌 첫 등판에서 마주한 상대는 지난해 KBO리그 통합 우승을 차지한 LG다.
하영민은 전혀 위축하지 않고 차분하게 LG 타선을 잠재웠다.
1회를 3자 범퇴로 가볍게 넘긴 하영민은 2회 오스틴 딘에게 안타, 박동원에게 볼넷을 내줘 2사 1, 2루 위기를 마주했다.
여기서 문성주에게 안타성 타구를 내줬으나 중견수 박수종이 다이빙 캐치로 2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채우며 하영민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후 하영민은 빠르게 이닝을 지워갔다.
4회 선두타자 김현수에게 단타 하나만을 내줬을 뿐, 3회와 5회를 타자 3명으로 정리했다.
5회 1사 후에는 문성주의 빠른 타구에 허벅지를 직격당했으나 차분하게 1루에 송구해 아웃을 잡았고, 신민재까지 내야 땅볼로 처리했다.
하영민은 6-0으로 앞선 6회초 시작과 동시에 마운드를 조상우에게 넘겼고, 팀이 8-3으로 승리하면서 감격의 선발승을 따냈다.
오랜만에 선발 마운드에 선 하영민은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했다. 긴장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이승호 투수) 코치님도 '평정심 유지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셨다. 긴장감을 억누르고,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한 "야수들도 많이 도와줬다. 덕분에 더 자신 있게 던졌다"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하영민의 마지막 선발승은 2015년 9월 23일 목동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전으로 무려 9년 전이다. 날짜로 따지면 3천111일 만이다.
LG를 상대로 한 마지막 선발승은 2014년 5월 30일 목동 경기였다. 10년 전인 당시에는 6이닝 1실점으로 잘 던졌다.
하영민은 "(10년 전) 스무살 때 승리를 한 것이랑,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승리한 게 정말 느낌이 다르다"고 감회에 젖었다.
하영민은 2014년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 지명으로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었다.
2차 3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입단 동기인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보다 먼저 호명됐던 선수다.
프로 초년병 때는 선발진에서 기회를 얻었고, 2018년 시즌이 끝난 뒤 팔꿈치 인대를 접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곧바로 군 복무까지 소화하고 2022년에야 팀에 복귀했고, 작년까지는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홍원기 감독으로부터 '선발 투수에 맞게 루틴을 만들어 와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는 "(김) 재현이 형 리드가 좋았다. 형만 보고 던지려고 했다. 다음 경기도 이렇게 던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하영민은 포수로부터 공을 받으면 지체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던졌다.
피치 클록 위반은 한 번도 없었고, 하영민의 빠른 투구 템포 덕분에 경기도 2시간 44분 만에 끝났다.
'3구 이내로 타자와 승부'를 목표로 삼았다는 하영민은 "내가 계속 볼을 던지면 수비하는 야수도 힘들다. 최대한 빨리 범타를 유도해서 잡고, 타자들은 타격에 집중하게끔 하고 싶다"고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선발진 한자리를 꿰찬 하영민은 크게 목표를 잡았다.
그는 "최소 150이닝 이상이 목표다. 10승은 선발 투수라면 모두가 가질 꿈"이라며 "(선발) 30경기 등판도 잘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우진과 정찬헌 등 국내 선발이 줄줄이 이탈한 가운데, 하영민이 자신의 목표에 가까워지면 키움 성적도 그만큼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