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산책] 이름만 빼고 다 바꾼 김수지 '메이저퀸으로 도약'

[권훈의 골프산책] 이름만 빼고 다 바꾼 김수지 '메이저퀸으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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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변화를 선택해 정상급 선수로 거듭난 김수지.
과감한 변화를 선택해 정상급 선수로 거듭난 김수지.

[KLPG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201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한 김수지(25)는 작년까지 상금랭킹 20위 이내에 들어본 적이 없다.

작년에는 상금랭킹 84위까지 추락, 시드전을 치른 끝에 투어에 복귀했다.

올해도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김수지는 존재감이 없는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김수지 이름 석 자를 모르는 골프 팬은 없다.

메이저대회인 하이트 진로 챔피언십을 포함해 2차례 우승했고 상금랭킹 6위(6억5천982만원)다.

김수지보다 상금을 더 많이 번 선수는 박민지(23), 임희정(21), 장하나(29), 박현경(21), 이소미(22)뿐이다.

KLPGA투어에서 이렇게 존재감 없던 선수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최정상급 선수로 변신하는 극적인 변화를 이뤄낸 선수는 거의 없었다.

김수지의 벼락출세 비결은 뭘까.

김수지는 "작년까지 하던 골프를 다 버리고 싹 바꿨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때 골프채를 처음 잡은 김수지가 작년까지 20년 넘게 추구하던 골프는 '또박이 골프'였다.

티샷은 멀리 치는 것보다는 페어웨이에 떨구는 게 최우선이고, 그린을 공략할 때는 안전한 장소에 볼을 올려놓고 퍼트로 승부한다는 게 김수지의 골프 철학이었다.

2017년 신인 시즌을 빼고 작년까지 드라이버샷 페어웨이 적중률은 늘 10위 이내에 들었을 만큼 김수지는 드라이버를 똑바로 치는 선수였다. 그는 "골프는 똑바로만 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대신 비거리는 하위권이었다. 2018년부터 그는 드라이버샷 순위에서 한 번도 60위 이내에 들지 못했다. 2019년엔 86위, 작년에는 87위였다.

지난해 시드를 잃은 김수지는 지금까지 추구해온 골프로는 더는 투어에서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프로 골프 무대는 정확한 선수보다 장타자를 우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수지는 대부분 페어웨이에서 공을 치고도 그린 적중률이 바닥이었다. 작년에는 페어웨이 안착률은 6위였는데 그린 적중률은 90위였다.

너무 멀리서 그린을 공략했기 때문이었다.

김수지는 "코스는 점점 길어지고, 다른 선수는 점점 더 비거리가 늘더라. 나는 현상 유지를 해도 뒤로 가는 셈이었다"고 털어놨다.

시드전에서 2021년 시드를 다시 딴 김수지는 비거리 늘리기를 겨울 훈련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1월부터 4월까지 넉 달 동안 일주일에 4~5일은 근육 키우기에 매달렸다. 하루 2시간 동안 바벨과 씨름했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안 했던 건 아닌데,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한 건 지난겨울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식단도 달라졌다. 고기를 하루 300g씩 꼭 챙겨 먹었다.

이런 노력 끝에 김수지는 이번 시즌에는 전혀 다른 선수로 거듭났다.

몸무게가 작년보다 5㎏ 이상 늘었고, 헤드 스피드는 4마일가량 증가했다. 덩달아 드라이버샷 비거리도 10야드 넘게 늘었다.

플레이 방식도 확 달라졌다. 힘을 빼고 조심스럽게 치던 드라이버를 있는 힘껏 휘두른다. 예쁘고 정돈된 피니시 자세 대신 몸이 휘청일 정도로 과감한 스윙으로 바뀌었다.

그는 "작년 시드 상실이 전화위복이 됐다. 그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게 모두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각오가 생겼다"고 돌아봤다.

김수지는 힘차고 자신감 넘치는 스윙으로 바뀌었다.
김수지는 힘차고 자신감 넘치는 스윙으로 바뀌었다.

[KLPG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수지의 변화가 금세 성과를 낸 건 아니었다.

6월까지는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 못했다.

김수지는 "시즌 초부터 나는 작년과는 전혀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 다만 아귀가 잘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곧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은 점점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김수지는 6월 20일 끝난 DB그룹 한국여자오픈에서 6위를 차지하며 시즌 첫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진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서 준우승한 그는 맥콜 모나 파크 오픈을 4위로 마쳤다.

3개 대회 연속 6위 이내에 오른 그는 9월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으로 생애 첫 정상에 섰다.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3위에 이어 메이저대회 하이트진로 챔피언십까지 제패한 김수지는 혁신의 달콤한 수확을 만끽하는 중이다.

그는 올해 장타 순위에서 23위(평균 243.2야드)에 올라 있다.

눈에 띄는 장타는 아니지만, 비거리가 모자란다는 말은 더는 듣지 않는 수준이다.

가장 눈에 띄는 기록 변화는 그린 적중률이다. 최혜진(22), 박민지, 유해란, 장하나, 이다연(24)에 이어 6위에 이름을 올렸다.

KLPGA투어에서 최정상급이다.

김수지는 "비거리가 늘어나니 골프가 좀 쉬워지더라. 전에는 롱아이언이나 하이브리드를 잡던 홀에서 미들 아이언이나 웨지로 칠 수 있으니 버디 기회도 많아지고, 보기가 줄었다"고 말했다.

작년까진 엄두도 내지 못하던 파 5홀 투온 시도도 부쩍 잦아졌다.

이름을 알리지 말라는 김수지의 동료 선수 한 명은 "사실은 작년까지 김수지는 동반 라운드하기에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플레이가 답답하고 시간을 많이 끌어서 같이 치다보면 리듬이 끊긴다고 꺼렸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김수지는 "늘 그린에서 가장 먼 곳에서 맨 먼저 공을 쳐야 하니까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린을 자주 놓치니까 한 번이라도 더 공을 치게 되니 동반 선수보다 시간을 더 잡아먹었다"면서 "올해는 플레이 속도가 누구보다 빠르다"며 웃었다.

김수지가 혁신을 통해 얻은 체중, 근육, 비거리 증가보다 더 소중한 자산은 '자신감'이다.

"전에는 경기에 나서면 걱정이 많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는 김수지는 "이제는 자신감이 가득한 채 경기에 나선다. 자신 있게 휘두르니 공이 더 잘 맞는다. 이제는 쉬운 코스보다 어려운 코스를 만나면 더 자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올해 5년째 KLPGA투어에서 뛰는 김수지는 내년에는 '최고 자리'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도 서슴없이 밝혔다.

"(어려운 코스에서 열리는) 메이저대회 우승을 더 하고 싶다. 내년에는 상금왕이나 대상을 노리겠다"고 김수지는 힘줘 말했다.

20년 동안 지속한 생각을 과감하게 버리고 변화를 선택한 김수지의 성공은 혁신이 시대정신이 되었음을 일깨운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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