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SK가 2:0 승리하며 2008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MVP로 선정된 최정이 김성근 감독의 축하를 받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김성근(81) 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전신) 감독은 지난해 최정(37·SSG)을 만나 "넌 진짜 대단하다"며 "내 훈련을 100% 소화한 선수는 너 하나뿐이다. 어떻게 그걸 버텼나"라고 물었다.
최정이 답했다.
"감독님이 너무 무서웠거든요."
꾸밈없는 최정의 답에 김성근 전 감독은 유쾌하게 웃었다.
"한국프로야구 KBO리그 통산 홈런 1위가 된 최정에게 축하 인사를 해달라"는 연합뉴스의 요청에 김 전 감독이 떠올린 '최근 에피소드'다.
김 전 감독은 "사실 내가 SK 감독일 때 선수들에게 '가능한 훈련의 120%'를 시켰다. 훈련을 20%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100%가 되게 하려는 의도였다"며 "그런데 최정은 훈련의 100%, 그러니까 실제로는 120%를 해냈다. 2006년 11월 제주도 마무리 캠프에서는 수비 훈련하며 펑고 1천개, 프리 배팅 1천개씩을 했다. 최정이 정상급 타자로 올라선 2011년 스프링캠프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훈련을 했다"고 전했다.
최정은 30대 후반에도 최정상급 3루 수비를 펼친다.
최정은 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방문 경기, 5회초에 개인 통산 468호 홈런을 쳐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의 KBO 통산 홈런 기록(467홈런)을 넘어섰다.
김 전 감독은 "정말 대단하다. 이승엽 감독이 일본에서 8년을 뛰긴 했지만, 최정의 기록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최정은 자세히 오래 보면 더 뛰어난 선수이고, 훌륭한 사람이다. 기량도, 인성도 최고"라고 극찬했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24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SSG 랜더스 경기. SSG 최정이 5회초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 통산 468호 홈런을 친 뒤 추신수와 포옹하고 있다. 최정은 이승엽 감독을 넘어 통산 홈런 1위를 기록했다. 2024.4.24 [email protected]
2005년 SK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최정이 붙박이 1군 선수가 된 건, 김성근 전 감독이 부임한 2007년부터다.
김 전 감독은 "2006년 11월 제주도 마무리 캠프에서 최정을 처음 만났다"고 '홈런 1위 최정 시대의 서막'을 다시 열어봤다.
"최정에게 펑고를 치면 10개 중 8개는 놓쳤다. 잡은 2개도 송구는 엉뚱한 곳으로 했다"고 회상한 김 전 감독은 "그런데 공일 놓칠 때마다 최정의 가슴이 불타오르는 걸 봤다. 그렇게 얌전한 선수가, 공을 놓치면 독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더 세게 쳐달라'는 눈빛 같았다. '얘는 되겠다'고 확신했고, 더 강하게 펑고를 쳤다. 훈련 성과는 경기에서 다 보여주지 않았나"라고 흐뭇하게 말했다.
김 전 감독은 "정근우도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였지만, 정근우는 힘들면 그라운드에 누워 버렸다. 내가 누워 있는 정근우를 향해 펑고를 쳐서 일어나게 했다"고 껄껄 웃으며 "최정은 달랐다. '씩씩' 거리면서도 바로 일어나서 다음 공을 기다렸다. '힘들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인천=연합뉴스) 최정인 기자 = 8일 인천 남구 신세계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 우승 기념 행사에서 김성근 감독이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김성근 전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사령탑 중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경기(2천651경기)를 지휘하고 다승 2위(1천388승)에 오른 베테랑 지도자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감독 어드바이저(감독 고문)로 일하기도 했다.
50년 넘게 야구 지도자로 일하며, 수많은 제자와 인연을 맺은 '야신' 김성근 전 감독에게도 최정은 특별한 선수다.
김 전 감독은 "강연하면서도 최정의 예를 자주 든다"며 "매일 TV로 야구 중계를 보는데, 최정은 지금도 흥미롭다. 미세하게 타격 자세를 바꾸더라. '어, 왜 이렇게 어이없는 스윙을 하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타석 또는 다음 경기 스윙을 보며 '아, 이래서 저런 시도를 했구나'라고 깨닫게 한다. 그런 위치에 있는 선수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연구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감탄했다.
(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16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 9회 말 2사 동점 솔로홈런으로 통산 467호 최다 홈런 타이 기록한 최정이 물세례를 받고 있다. 2024.4.16 [email protected]
'최정의 인성'은 김 전 감독이 꼽는 '롱런의 비결'이다.
김 전 감독은 "최정처럼 모두에게 예를 갖추는 선수는 흔치 않다. 최정이 공격적일 때는, 훈련하고 경기할 때뿐"이라며 "늘 겸손하고, 뭔가를 배우려고 한다. 달변가는 아니지만, 사려 깊게 말한다"고 칭찬을 이어갔다.
김성근 전 감독은 2011년 8월 SK를 떠났고, 최정은 여전히 한 팀에 남아서 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최정은 꾸준히 김성근 전 감독에게 안부를 묻는다.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지만, 최정은 가끔 의외의 한 마디로 김 전 감독을 깜짝 놀라게 한다.
2014년 시즌 종료 뒤 결혼을 준비하며 최정은 김성근 전 감독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최정의 결혼식 날이 마침, 김성근 전 감독의 생일(12월 13일)이었다.
"하필 내 생일에 주례를 부탁하나"라고 김 전 감독이 묻자, 최정은 "감독님 생신을 평생 기억하려고요"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김성근 전 감독은 "내가 무서워서 훈련했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다. 사석에서 최정은 말대꾸도 한다"고 껄껄 웃었다.
프로 20년 차를 맞은 최정은 여전히 KBO리그 최정상급 기량을 갖추고 있다. 인성도 여전히 좋다.
김 전 감독은 "최정은 한국 야구 유망주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선수다. 노력이 얼마나 사람을 높은 곳에 올려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며 "지금처럼 열심히, 겸손하게, 오랫동안 야구했으면 한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