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2021년 한국프로야구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추신수(39·SSG 랜더스)'였다.
SSG가 추신수 영입을 발표하자 KBO리그에서 스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선수들마저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에서만 보던 추신수 선배와 함께 뛰는 건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추신수도 '놀랍고 행복한 1년'을 보냈다.
추신수는 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취재진과 만난 2021시즌을 돌아봤다.
그는 팀이 아쉽게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걸 아쉬워하면서도 "주요 선발 투수가 이탈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며 "개인 기록 면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지만, 아직 뛸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아직 추신수는 2022년 자신이 서 있을 곳을 정하지 못했다. '선수 추신수'와 '아버지 추신수'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진다.
추신수는 다음 주 미국으로 건너가 가족과 현역 연장 및 은퇴 여부 등을 상의할 계획이다.
그는 "11월 중에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어떤 선택을 내리건, 2021년은 추신수와 한국 야구팬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해'로 남는다.
다음은 추신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한국에서 첫 시즌을 마쳤다.
▲ 미국에서 뛸 때도 좋은 시즌과 아쉬운 시즌이 있었다. 좋았던 시즌에도 항상 미련과 후회는 남았다. 올해도 그렇다. 팀 성적은 정말 아쉽다. 마지막 2경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즌 초에 선발 3명(박종훈, 문승원, 아티 르위키)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김원형 감독님과 코치진,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 나는 우리 선수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선수단 모두가 고생한 게, 빛을 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1년 동안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 선수들과 편하게 한국말로 대화한 1년 동안 정말 행복했다.
-- 개인 성적에 대한 평가는.
▲ 많은 팬이 내 개인 성적과 팀 성적에 아쉬워한다는 건 알고 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1번과 3번 타자로 자주 출전했다. 대부분의 타자가 2안타를 목표로 경기에 출전하는데, 나는 출루 3개를 목표로 타석에 섰다. 타율도 아쉽지만, 출루율도 만족할 수 없다. 그래도 출루율 4할은 유지했고, 볼넷 100개 이상을 얻었다. 도루도 20개 이상 성공했다. 아직 뛸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 추신수와 함께 뛴 SSG 선수들이 '영광'이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
▲ 고교 때까지는 나도 선배와 후배의 수직 관계를 따랐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며 여러 나라에서 온 선수들을 보고, 대화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웠다. SSG에서도 후배들에게 '이걸 해'라고 지시하기보다는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나와 스무 살 차이 나는 후배들도 성인이다. 내가 조금 더 경험을 많이 한 선수일 뿐이다.
10월 19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SSG 최정이 4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통산 400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추신수 선수가 포옹하고 있다. 400홈런 기록은 이승엽 선수 이후 역대 2번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KBO에서 만난 후배 중 기억에 남는 선수는
▲ 나성범(NC 다이노스), 최정(SSG) 등 정말 많다. 내가 삼진을 한 개도 당하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는 없다. 솔직히 삼진을 당했을 때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다.(웃음) 그래도 한국의 젊은 선수가 '추신수에게 삼진을 잡았다'라고 자부심을 느꼈다면, 내가 그 선수의 미래에 작은 도움이 된 게 아닐까. 나도 미국에서 에이스 투수를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내면 뿌듯했다.
-- 상대하기 어려웠던 투수는.
▲ 고영표(kt wiz) 공은 정말 못 치겠더라. 미국 잠수함 투수 중에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투수는 드물다. 그런데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타석 앞에서 공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고영표를 상대할 때면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고영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투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KBO리그와 국제대회에서 오래 활용했으면 한다.
--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도 있을 텐데.
▲ KBO리그 수준 높은 선수들 많다. 올해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단기간에 좋아질 것이다. 다만, 선수들이 조금 더 프로 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평생 야구할 수 없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 SSG도 시즌 마지막 경기처럼 시즌 초에도 경기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타율 0.299와 0.300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500타석에 들어서면 몇몇 타석은 집중하지 않아서 범타로 물러날 때가 있다. 그렇게 허비하는 타석을 줄여야 3할 타자가 된다.
-- KBO리그 환경에 관한 조언도 자주 했다.
▲ 선수들이 쉴 공간이 부족하다. 특히 원정팀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경기를 치른다. 동등한 대결이 이뤄지기 어렵다. 원정팀 라커룸을 코치와 같이 쓰는 것도 너무 낯설었다. 선수들이 치료받을 공간도 야구장 내부에 있어야 한다.
-- 동갑내기 오승환(삼성 라이온즈)과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를 KBO리그에서 만난 기분은.
▲ 정말 기분 좋았다. 오승환을 상대할 때 되면 아드레날린이 더 나오는 것 같다. 승환이가 그 나이에 어마어마한 기록(44세이브)을 세운 걸 축하한다. 오승환이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는지 보면 왜 이 나이에도 그런 성적을 내는지 알 수 있다. 후배들이 승환이와 대호의 모습을 보고 감탄만 하지 말고, 장점을 배웠으면 좋겠다.
-- 내년에도 SSG에서 볼 수 있을까.
▲ 저도 궁금합니다.(웃음). 구단과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혼자 결정할 수 없다. 가족과 상의를 해야 한다. 버스터 포지도 더 뛸 수 있는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은퇴하지 않았나. 미국 선수들은 '야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야구에 미련이 남긴 했다.
-- 한국과 미국에서 우승하지 못해 더 미련이 남는 건가.
▲ 그렇다. SSG에서 영입 제의를 받은 뒤, 구단 홈페이지에서 선수 명단을 봤다.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 팀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지는 팀이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SSG 선수들과 힘을 합하면 우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언제쯤 결정을 내릴 계획인가.
▲ 다음 주 중에 미국으로 건너간다. 11월 중에는 결정하겠다. 현역으로 계속 뛰려면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도 받아야 한다. 올 시즌 외야수로 출전할 때 20∼30m도 송구하지 못했다. 올스타 휴식기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주치의를 만나 치료를 받았다. 선수로 더 뛰려면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 곧 결정하겠다.
-- 아내가 한국 야구장에서 관람했는데.
▲ 한국 야구장을 찾은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벌써 우리 팀 응원가와 춤을 배웠더라. '응원단에 올라가라'고 농담도 했다.
-- 두 아들에게 KBO리그행을 권할 수 있나.
▲ 두 아들이 어떤 야구 선수로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 야구를 해볼 만한 곳'이라고 말해주겠다. 내 아이들이 미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한국인 부모가 있는 한국 사람이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생활해서 한국 생활이 두려울 수는 있다. 일단 지금은 아이들에게 성실함을 강조하고 싶다. 아이들이 야구에 재능은 있다. 예전부터 노력하는 선수와 게으른 선수의 차이를 알려줬다.
-- 미국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여러 차례 말했지만, 최정은 정말 대단한 선수다. 나도 몸에 맞는 공에 시달렸지만, 최정은 정말 자주 사구를 맞고도 몸쪽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성범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다. 미국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에게는 '꼭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을 하고 가라'고 조언한다. 스플릿 계약을 하면 야구에만 집중하기 어렵다. 무조건 가자마자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계약을 해야 한다.
-- 김광현이 SSG에 돌아온다면.
▲ 내가 김광현에게 '같이 뛰고 싶다'고 얘기했다. 광현이는 그냥 웃고 말더라. 김광현은 승부사 기질이 있는 선수다. 당연히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김광현의 의사가 중요하다. 메이저리그 오퍼를 확인한 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