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프로야구 kt wiz 박병호(36)의 이름 앞에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기량을 나타내는 곡선)'라는 단어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6시즌 연속 30홈런 이상을 터뜨리며 KBO리그를 호령했던 박병호의 타격 성적은 2020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는 2020시즌 타율 0.223에 그쳤고, 지난해에도 타율 0.227로 부진했다.
박병호는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슬럼프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주변에선 일시적인 부진이 아닌 노쇠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박병호는 느려진 배트 스피드로 인해 직구 공략이 어려워지면서 정타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원소속팀 키움 히어로즈 내부에서도 박병호의 부활 가능성을 낮게 봤다.
키움이 2021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박병호를 잡지 않은 이유다.
주변의 우려 속에 kt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박병호는 보란 듯이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시즌 초반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으로 인해 고생했지만, 4월 하순부터 전성기의 모습을 재연하며 kt 타선을 이끌고 있다.
박병호는 올 시즌 30경기에 출전해 106타수 30안타 타율 0.283, 10홈런, 26타점을 올리며 맹활약하고 있다.
홈런 1위, 타점 2위, 장타율(0.594) 3위, OPS(장타율+출루율·0.952) 5위 등 타격 각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다.
홈런 페이스는 근래 최고 수준이다. 박병호는 올해 29경기 만에 10홈런 고지를 밟았다.
그는 33홈런을 때린 2019시즌엔 37경기 만에 10홈런을 생산했다.
43홈런을 터뜨린 2018시즌에도 초반 29경기에서 10개 홈런을 날렸다. 현재 페이스만 따지면 박병호는 올 시즌 전성기에 버금가는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3일 경기도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2 KBO리그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t wiz의 경기. 3회말 2사 주자 1루에서 KT 박병호가 투런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2022.5.3 [email protected]
최근 5경기 성적은 매우 눈부시다. 박병호는 5월 이후 5경기에서 타율 0.389, 4홈런을 휘두르고 있다.
홈런의 내용도 의미 있다. 최근 2시즌 동안 강속구 대처에 고전했던 박병호는 올 시즌 많은 직구를 공략해 홈런으로 연결했다.
10개 홈런 중 6개가 직구였고 슬라이더가 2개, 체인지업과 커브가 각각 1개씩이었다.
에이징 커브의 증거라고 불리는 강속구 대처 능력이 눈에 띄게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병호의 활약은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나와 더 의미 있다.
올해 kt는 강백호, 헨리 라모스가 나란히 발가락 골절상으로 이탈하면서 중심 타선이 붕괴했다.
kt는 타선이 무너지자 올 시즌 초반 최하위권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중심타선에서 집중 견제를 뚫고 홀로 맹활약하며 kt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박병호의 활약은 '작은 변화'에서 시작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예전엔 상대 투수가 다리를 올렸다가 내릴 때 다리를 끌었지만, 지금은 투수가 다리를 올릴 때 다리를 끄는 식으로 타격 타이밍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몸의 움직임을 살짝 먼저 시작하면서 타격에 걸리는 시간을 약간 더 확보한 것이다.
박병호는 작은 변화로 자신감을 되찾았고, 세월을 역행하며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박병호가 홈런 타이틀을 가져간 건 33개의 아치를 그린 2019년이 마지막이다. 박병호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